핵심 요약: 미국 중동 특사 재러드 쿠슈너(Jared Kushner)가 하마스 대표단과의 이례적인 회담에 이어 네타냐후(Netanyahu) 이스라엘 총리와도 만나며 가자 협상의 교착을 풀려는 움직임이 빨라졌습니다. 협상의 핵심 쟁점은 하마스 무장 해제와 이스라엘군 철수라는 두 과제를 누가 먼저 이행하느냐에 맞춰져 있는데요. 10월 이스라엘 총선을 두 달 앞둔 시점에서 네타냐후의 정치적 부담이 커 결과를 예측하기 어렵습니다.
쿠슈너 특사가 하마스를 직접 만난 게 왜 이례적인가?
지난 16일(현지시간) 이집트 엘 알라메인에서 열린 회담에는 하마스 정치국 부의장 칼릴 알 하이야(Khalil al-Hayya) 등 하마스 대표단이 참석했고, 이집트·카타르·튀르키예 외교 관계자들이 배석했다1. 미국 행정부 고위 인사가 하마스 지도부와 직접 맞대응을 한 것은 이례적이라는 평가입니다2. 미국은 오랫동안 하마스를 무장 집단으로 규정하고 공식 접촉을 자제해 왔기 때문에 이번 가자 협상 회담은 그간의 관행을 깨는 장면으로 기록될 가능성이 큽니다.
이 분위기 전환이 가능해진 데는 가자 전쟁의 장기화에 따른 인도적 부담과 외교적 압박이 배경으로 깔려 있습니다. 미국 행정부가 가자 문제에서 가시적 진전을 만들어야 한다는 압박에 처해 있다는 보도도 이를 뒷받침합니다3.
이번 회담의 목표는 무엇인가?
이번 회동의 직접적인 목표는 미국 주도로 지난 1년여 동안 검토돼 온 ’15개항 로드맵’을 다시 가동시키는 데 있습니다1. 이 로드맵은 가자지구 내 하마스의 무장 해제와 이스라엘군의 단계적 철수를 한 묶음으로 엮은 합의 초안입니다. 매 단계마다 양측이 무엇을 내놓고 무엇을 받아내는지가 미리 정해져 있다는 점에서 일종의 거래 카탈로그라고 불리죠.
종전 휴전이 성립된 직후 10개월 넘게 외교적 노력이 이어졌지만 양측이 핵심 쟁점에서 맞서며 진전이 멈춰 있었습니다4. 쿠슈너 특사는 17일 토니 블레어(Tony Blair) 전 영국 총리, 국제연합 중동 평화 조정관을 지낸 니콜라이 믈라데노프(Nikolay Mladenov) 등 국제사회 고위 인사들과 함께 이스라엘로 건너가 네타냐후 총리와 마주 앉았습니다2. 블레어는 2007~2015년 사이 중동 4중대표(Quartet Representative)로 활동한 인물이기에 국제사회의 상징적 배치가 의식된 자리입니다. 미국 단독 압력보다 영국·유엔 인사들이 함께 앉는 자리가 정치적 부담을 분산시키는 효과가 있어 네타냐후 입장에서도 국제사회 제안이라는 표현을 쓰기 쉬워집니다.
‘무장 해제’와 ‘철수’, 어느 쪽이 먼저여야 하는가?
협상의 본질적 교착은 이 두 과제의 순서입니다. 하마스는 회담에서 합의 이행 의지를 재차 표명하면서도, 로드맵 이행에 앞서 이스라엘이 가자지구 공격을 멈추고 이른바 ‘황색선’ 밖으로 철수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이른바 ‘황색선’은 이스라엘군이 현재 배치선을 구분하기 위해 그어둔 지리적 표시선으로, 이 선 밖으로 물러설지 여부가 협상 카드 역할을 합니다.
반면 네타냐후 총리는 한 발도 양보하지 않는다. 하마스가 완전히 무장 해제될 때까지 이스라엘군이 가자지구 내 어떤 진지에서도 철수하지 않겠다는 입장입니다. 두 요구는 한쪽이 먼저 움직이지 않으면 다른 쪽도 움직이지 않는 구조적 데드락 안에 갇혀 있습니다. 협상가는 양측이 동시에 한 발씩 물러서는 동시 행진을 주문하지만, 한쪽은 ‘먼저 끝내고 가라’고 하고 다른 한쪽은 ‘먼저 비우고 나서 시작하자’고 해 진전을 만들기가 어렵습니다.
쿠슈너가 네타냐후를 설득할 수 있는가?
네타냐후 총리가 양보하기 어려운 정치적 이유가 있습니다. 이스라엘은 올해 10월 총선을 앞두고 있어, 현 연정에는 우파 정당들이 포함돼 있고 우파 성향 유권자의 지지를 확보해야 하는 부담이 큽니다4. 가자 전쟁의 군사적 책임을 지고 있는 정권이 스스로 군사적 후퇴를 선언하는 형태로 합의가 발표되면 연정 내 우파 정당들의 이탈을 촉발할 여지가 있습니다. 정치적 생존이 우선인 정치인에게 무장 해제의 가시적 근거가 확보되지 않은 채 군을 후퇴시키는 것은 자살 행위로 비칠 수 있죠.
쿠슈너 특사 측이 진전을 보여야 하는 입장으로 알려졌다는 점3은 협상 결렬 시 외교적 부담이 가중될 수밖에 없음을 시사합니다. 이 같은 상황에서 국제사회가 다자 구도로 회담에 참여하는 것은 의도된 선택입니다. 미국 단독의 압력보다 영국·유엔 인사들이 자리한 자리에서 조율을 벌이는 것이 정치적 부담을 분산시키는 효과가 있기 때문이죠.
용어 정리
- 황색선(yellow line): 가자지구 내에서 이스라엘군이 현재 배치되어 있는 선을 구분하기 위한 지리적 표시선. 협상에서 이 선 밖으로 철수할지 여부가 쟁점이 됩니다.
- 15개항 로드맵: 미국이 주도해 가자 전쟁 종식안을 담은 15개 항목의 단계별 합의안. 무장 해제와 철수를 서로 묶어 순서를 정하는 방식이 골자입니다.
- 무장 해제(disarmament): 하마스가 보유한 무기를 국제 사회의 감시 하에 반납·폐기하고 무장 조직으로서의 기능을 종료하는 절차.
한국에는 어떤 의미인가
가자 전쟁은 한국 사회에서도 외교·안보 담론의 단골 주제입니다. 한국 정부는 오랫동안 ‘두 국가 해법’을 지지한다는 입장을 일관되게 밝혀 왔고, 국제연합 등에서의 입장 표명도 이 틀 안에서 이뤄져 왔죠. 이번 회담은 미국이 단순한 중재자가 아니라 직접 가자 협상의 한 축을 자처하는 양상이라는 점을 분명히 합니다. 쿠슈너 특사가 하마스 지도부와 직접 얼굴을 맞댄 장면은 그동안의 관행을 깨는 것이어서 한반도 문제와는 질적으로 다른 접근입니다.
한국 독자 입장에서는 이번 가자 협상의 향방이 한반도에서 미국이 어느 정도 깊이로 관여해 왔는지를 가늠하는 참고점이 됩니다. 미국이 특정 무장 세력의 지도부와 직접 회담을 여는 형식 자체가 어떤 결과를 내는지는 북한 문제에 적용되는 방식과는 결이 다르게 작동할 가능성이 큽니다. 실제로 미국은 북한과는 6자 회담 같은 다자 프레임을 갖고 있지만 하마스와는 양자 회담을 시도하고 있습니다. 또한 이번 가자 협상의 향방은 미국 중동 정책의 무게중심이 어디에 있는지, 그리고 여야 어느 쪽이 이를 정치적으로 떠받치는지를 동시에 드러내는 시험대가 될 가능성이 있습니다.
생각해볼 점
- 네타냐후 정권의 우파 연정 구성이 양보안 수용에 미치는 구체적 영향
- 10월 이스라엘 총선 일정과 맞물려 협상 결과가 사실상 언제까지 가시화돼야 하는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