핵심 요약: OpenAI, Anthropic, Google DeepMind 등 주요 AI 기업 경영진이 미국 의회에 합성 DNA·RNA 주문 규제 법제화를 촉구했다. 위험 서열 검사와 구매자 신원 확인을 의무화하자는 내용으로, AI가 생물학 정보의 진입장벽을 낮출 수 있다는 우려 속에서 소프트웨어가 아니라 실제 물질이 오가는 공급망 단계에 안전장치를 두려는 예방적 접근이다.
합성 DNA 주문 규제, 왜 지금 나왔나
OpenAI, Anthropic, Google DeepMind를 비롯한 AI 기업의 최고경영자들이 미국 연방의회에 공개서한을 보내 합성 DNA·RNA 주문에 관한 법률 제정을 요구했다. 핵심은 두 가지다. 합성 핵산을 판매하는 업체가 주문받은 염기서열에 위험한 병원체 관련 정보가 들어 있는지 검사하고, 주문한 사람의 신원을 확인하도록 법으로 의무화하자는 것이다. 조선일보 보도에 따르면 이 서한은 DNA 등을 합성해 주는 기업들이 고객 주문을 사전 검사하고 위험이 확인되면 차단하도록 의무화해야 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흥미로운 지점은 규제 대상이 AI 모델 자체가 아니라는 점이다. AI가 생물학 지식의 진입장벽을 낮출 수 있다면, 정보가 실제 물질로 이어지는 마지막 단계인 합성 DNA 주문 과정에도 방어선을 세워야 한다는 논리다.
합성 DNA 주문이 뭐길래 규제 이야기가 나올까
합성 DNA 주문은 연구자가 컴퓨터로 설계한 염기서열을 전문 업체에 보내 화학적으로 제작해 받는 방식을 말한다. 백신 연구, 유전자 기능 분석, 진단기술 개발 등에 폭넓게 쓰이는 편리한 기술이다. 과거에는 자연에서 유전물질을 분리하거나 복잡한 실험을 거쳐야 했지만, 지금은 디지털 서열 정보만 보내면 맞춤형 DNA를 받을 수 있다.
문제는 같은 편리함이 위험한 목적으로도 쓰일 수 있다는 데 있다. 특정 병원체나 독성 관련 서열이 주문될 경우 판매업체가 이를 걸러낼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 이번 요구의 출발점이다.
이미 자체적으로 검사하고 있지 않나
많은 합성 DNA 업체는 이미 자발적으로 위험 서열과 고객을 확인해 왔다. 문제는 이 조치가 모든 공급업체에 법적으로 똑같이 적용되지는 않는다는 점이다. 검사가 느슨한 업체나 국가를 이용하면 우회할 여지가 있고, 성실하게 검사하는 업체만 비용과 시간 부담을 지는 불균형이 생긴다. 그래서 일부 합성생물학 업체도 법적 의무화를 지지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시장 전체에 동일한 최소 기준이 적용되면 이런 불공정이 줄어들기 때문이다.
AI 기업들이 요구한 핵심 안전장치는 무엇인가
공개서한의 요구는 크게 위험 서열 검사와 구매자 신원 확인 두 가지로 정리된다. 위험 서열 검사는 주문된 DNA·RNA 서열을 위험 병원체나 독성 관련 데이터베이스와 비교하고, 의심되는 주문은 추가 검토하거나 관계기관에 보고하도록 하는 조치다. 알려진 병원체와 완전히 일치하는 서열뿐 아니라 일부 변형되거나 기능적으로 위험할 수 있는 조각도 함께 살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구매자 신원 확인은 누가, 어느 기관에서, 어떤 목적으로 주문했는지를 확인하는 절차다. 금융권의 고객확인제도와 비슷한 방식으로, 개인정보와 연구 자유를 침해하지 않으면서 익명 주문을 걸러낼 기준이 필요하다는 논의가 함께 이뤄지고 있다.
AI는 생물학 연구에서 무엇을 바꾸나
대규모 언어모델은 논문을 요약하고 실험 절차를 설명하며 유전자 서열 분석을 돕는다. 신약 후보 탐색, 단백질 구조 예측처럼 긍정적인 활용이 큰 반면, 전문지식이 부족한 사람에게도 복잡한 생물학 정보를 쉽게 연결해 줄 수 있다는 이중용도 우려도 함께 제기된다. 실제로 스스로 먹고 자라며 번식하는 인공 세포 연구에 대해서도, 세균이나 바이러스를 더 위험하게 바꾸는 데 필요한 시행착오가 줄어 생물학 무기 연구의 문턱이 낮아질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 바 있다.
다만 AI가 텍스트로 정보를 제공하는 것과 실제로 위험한 물질을 만들어 확산시키는 것은 전혀 다른 단계다. 시설, 장비, 숙련된 실험 능력 같은 현실적 장벽이 여전히 존재한다. 이번 합성 DNA 주문 규제 요구도 AI가 모든 장벽을 없앴다는 주장이 아니라, 정보 장벽이 낮아질 가능성에 대비해 물리적 공급 단계를 강화하자는 예방적 접근에 가깝다.
용어 정리
- 합성 DNA·RNA: 컴퓨터로 설계한 염기서열을 화학적으로 제작한 유전물질. 연구용으로 주문 제작할 수 있다.
- 이중용도(dual-use): 같은 기술이나 정보가 치료제 개발 같은 유익한 목적과 위험한 목적 모두에 쓰일 수 있다는 개념.
- 위험 서열 검사: 주문된 DNA·RNA 서열을 위험 병원체 데이터베이스와 대조해 위험 여부를 확인하는 절차.
- 구매자 신원 확인: 주문자가 실제 존재하는 기관·개인인지, 목적이 합리적인지를 확인하는 절차.
합성 DNA 주문 규제가 쉽지 않은 이유
법으로 만든다고 위험이 전부 사라지지는 않는다. 위험 서열의 범위를 정하기가 어렵다는 점이 첫째다. 병원체 연구는 백신 개발에도 필요하기 때문에 같은 서열이 유익한 연구와 위험한 목적 모두에 쓰일 수 있다. 둘째, 짧은 DNA 조각을 여러 업체에서 나눠 주문한 뒤 결합하는 방식으로 검사를 우회할 가능성도 거론된다. 셋째, 미국만 규제해도 해외 공급업체를 이용하면 우회할 수 있어 국제적인 협력이 함께 필요하다는 지적이 있다. 넷째, 검사 시스템 구축 비용이 중소 연구기관과 스타트업에는 부담이 될 수 있다는 우려도 있다.
과도한 공포도 경계해야 한다
AI와 생물무기라는 표현은 자극적이지만, 현재 AI가 단독으로 새로운 병원체를 설계하고 제작과 배양, 확산까지 자동으로 수행할 수 있다고 단정할 근거는 없다. 생물학 실험은 디지털 코드 실행과 달리 실패 가능성이 높고 현실적 제약이 많다. 동시에 실험이 어렵다는 이유로 위험이 아예 없다고 안심할 수도 없다. AI가 논문 탐색과 실험 계획을 지원하면서 일부 장벽을 낮출 가능성은 검토할 가치가 있다는 게 이번 서한의 시각이다.
아주경제 보도에 따르면 최근 유엔 총회에서도 안토니우 구테흐스 사무총장이 인류의 미래를 AI가 좌우하도록 놔둬서는 안 된다며 글로벌 거버넌스 체계를 촉구하는 등, AI 안전 논의가 소프트웨어를 넘어 여러 현실 영역으로 확장되는 흐름이 이어지고 있다.
생각해볼 점
- 위험 서열의 범위를 어디까지 정해야 정상적인 백신·치료제 연구를 막지 않으면서 위험을 걸러낼 수 있을까.
- 미국만 합성 DNA 주문 규제를 강화할 경우 해외 공급업체를 통한 우회를 막으려면 어떤 국제 협력이 필요할까.
- 검사 비용 부담이 큰 중소 연구기관과 스타트업에는 어떤 지원 방안이 함께 논의돼야 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