핵심 요약: 해마다 찾아오는 광복절, 하지만 그 빛을 못 본 독립유공자 훈장이 무려 7,622개나 남아 있습니다. 후손들이 3~5세대에 이르러 찾기 어려워졌고, 증빙 자료도 부족한 상황. 보훈부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4년 7개월 동안 770건만 전달됐다는 사실, 과연 이 문제를 해결할 방법은 없을까요?
도대체 왜 이렇게 많이 남았나?
연합뉴스 보도에 따르면, 국가보훈부에 전달되지 못한 건국훈장, 건국포장, 대통령표창 등의 수는 정확히 7,622개입니다. 지역별로 보면 경기 547명, 충남 456명 등 전국에 골고루 분포되어 있죠. 놀라운 점은, 이 중 약 40%는 남측에 본적을 두고도 후손을 찾지 못한 경우랍니다. 분단 이전에 신분을 숨긴 활동가나, 전쟁과 이산으로 흔적이 사라진 경우가 많아 남아있는 주민 명부만으로는 추적이 한계에 부딪힌다고 해요.
후손의 끈이 끊어진 이유는?
독립운동가 분들이 신분을 숨기면서 활동하거나, 젊은 나이에 순국해 자녀를 두지 못한 경우가 많습니다. 게다가 가족에게 그 사실이 제대로 전해지지 않은 사례도 적지 않죠. 대표적으로 1962년 건국훈장 독립장을 받은 김수민 지사는 64년째, 안경숙 지사는 118년 만에 훈장을 받았지만 후손どころか 묘소 위치도 확인되지 않고 있습니다. 신분 은닉, 젊은 순국, 가족 미전승 등 복합적인 이유가 겹쳐 독립유공자 훈장 후손 찾기가 점점 더 어려워지고 있습니다.
일부 가문에서는 독립운동 사실 자체가 일제의 보복이 두려워 의도적으로 숨겨지기도 했답니다. 시간이 지나 증언이 단절되고, 족보나 향리 기록이 사라지면 추적할 실마리조차 사라지는 거죠.
정부는 얼마나 찾고 있나?
보훈부는 2007년부터 재외 독립유공자 후손 찾기 사업을 시작했고, 2018년에는 전문가로 구성된 ‘독립유공자 후손확인위원회’를 운영 중입니다. 지자체와 함께 미전수 훈장을 전시하고 제보를 받는 사업도 하고 있구요. 2022년부터 최근까지 770건의 훈장을 후손에게 전달하는 성과를 냈습니다.
하지만, 전체 7,622건에 비하면 4년 7개월 동안 770건은 연간 약 170건에 불과합니다. 이 속도라면 남은 6,800여 건을 해결하는 데 수십 년이 걸릴 수밖에 없어요. 전시나 제보 방식만으로는 스스로가 독립유공자 후손인 줄 모르고 사는 경우까지 찾아내기 힘들다는 한계도 있습니다.
외국인 독립유공자의 훈장은?
외국인 독립유공자 훈장도 마찬가지입니다. 후손을 찾지 못한 외국인 독립유공자는 11명이며, MBC가 후손을 찾아낸 3명을 제외한 5명은 여전히 유족을 알 수 없는 상태입니다. MBC는 온라인 묘지 정보와 해외 기록을 교차 확인해 후손을 찾아내는 데 성공하기도 했죠.
또한 2015년 건국포장을 받은 한 외국인 독립유공자의 훈장은 11년 동안 후손을 찾지 못해 전달되지 못했고, 후손들은 한국 정부로부터 어떤 연락도 받지 못했다고 합니다. 해외에 사는 유족은 행정보고가 닿기 어려운 사각지대에 놓이기 쉬운데, 현지 언론과 민간의 도움이 결정적이었던 셈이에요.
앞으로는 더 어려워질까?
보훈부는 시간이 갈수록 독립유공자 훈장 후손 찾기가 더 어려워질 것이라고 전망합니다. 후손이 3~5세대에 접어들고 증빙 자료도 점점 부족해지기 때문이죠. 숭실대 황민호 교수는 미전수자가 7천 명이 넘는 만큼 별도의 전담팀(TF)을 구성해 전수조사를 해야 한다고 제안했습니다. 현행 위원회만으로는 누적된 물량을 처리하기 어렵다는 진단에서 나온 조언이랍니다.
생각해볼 점
- 7,622명 중 남측 본적자가 약 40%라는 건, 후손이 끊긴 이유가 단순히 분단 때문만은 아니라는 뜻입니다. 신분 은닉이나 자료 소실이 더 큰 변수라면, 정책도 본적보다 ‘증빙 자료 확보’에 집중해야 실질적인 진전이 있을 거예요.
- 현재 속도로는 수십 년이 걸립니다. 황민호 교수가 말한 전담 TF 구성 여부가 해결의 열쇠가 될 수 있겠네요.
- MBC의 사례는 정부 자료만으로는 한계가 있다는 걸 보여줍니다. 해외 기록과 현지 협조망을 확대하는 게 중요한 과제로 남아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