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은사 전 주지 명진스님 입적…’행동하는 수행자’의 발자취를 돌아보다

핵심 요약: 봉은사 전 주지 명진스님이 22일 제주 서귀포 해상에서 자유다이빙 중 사고로 입적하셨습니다. 세수 76세, 법랍 52년. ‘행동하는 수행자’로 불리며 1980년대 불교계 민주화운동과 1994년 조계종단 개혁에 참여하고, 이명박 정부와 조계종 지도부를 공개 비판했던 고인의 행적과 추모 현황을 정리해봅니다.

명진스님은 어떤 인물이었을까요?

명진스님은 1950년 충남 당진에서 태어나셨습니다. 1969년 출가한 뒤 성철 스님 밑에서 행자 생활을 하셨고, 베트남전에 참전한 경력도 있다고 해요. 출가와 참전, 두 가지 전혀 다른 세계를 모두 경험하신 이력은 이후 그의 삶을 관통하는 키워드인 ‘행동하는 수행자’라는 수식어와 무관하지 않겠죠?

봉은사 주지를 지내신 명진스님은 좌식 수행에만 머물지 않는 스님이었어요. 1980년대 불교계 민주화운동에 참여하셨고, 1994년 조계종단 개혁에도 몸을 던지셨습니다. 경향신문 보도에 따르면, 이명박 정부와 조계종 지도부를 공개 비판하기도 했답니다. 권력 앞에서 침묵하지 않는 태도는 종단 내부뿐 아니라 사회 전반에 걸쳐 드러났죠. 스님은 불교계의 문제를 지적할 때도, 정부의 정책을 비판할 때도 같은 잣대를 들이댔습니다. 수행자의 평온함과 행동가의 직언을 동시에 갖춘 인물이라는 평가가 따랐어요.

명진스님이 생전에 걸어오신 길을 돌아보면 한 가지 일관된 기준이 보입니다. 권력이 종단 내부에 있든 정부에 있든, 옳지 않다고 판단하면 직언하셨죠. 1980년대 민주화운동에서 보여준 태도나 1994년 종단 개혁에서의 참여, 그리고 이명박 정부에 대한 공개 비판까지, 시대가 달라져도 방식은 같았습니다. 봉은사 주지라는 직책은 종단 내에서 상징성이 큰 자리인데요. 그 자리에 있던 스님이 정부 정책과 종단 지도부를 동시에 비판했다는 것은, 외부의 압력이나 내부의 반발에 흔들리지 않겠다는 의지의 표현이기도 했을 거예요. 이런 행보 덕분에 ‘행동하는 수행자’라는 수식어가 자연스럽게 따라붙었습니다.

사고는 어떻게 일어났나요?

명진스님은 가부좌로 상한 무릎을 치료하기 위해 제주 서귀포 바다에서 자유 다이빙을 하던 중 사고를 당하셨습니다. 오랜 좌선 수행으로 무릎을 다친 뒤, 바다에서의 자유다이빙을 치료 방편으로 삼았던 것이죠. 22일, 그 바다에서 사고가 발생했고 결국 세수 76세, 법랍 52년으로 입적하셨답니다.

52년의 법랍은 1969년 출가 이후 지금까지 이어진 수행의 길입니다. 76년의 세수 속에는 충남 당진의 어린 시절, 성철 스님 곁의 행자 생활, 베트남전의 참전, 민주화운동과 종단 개혁의 현장, 그리고 봉은사 주지로서의 책임이 차례로 쌓여 있죠. 마지막 장면이 제주 바다였다는 사실은, 그가 삶의 끝에서도 자신의 몸을 수행의 연장선에 두었음을 보여줍니다. 제주 바다에서의 자유다이빙은 무릎 치료가 목적이었지만, 좌식 수행의 한계를 자신의 몸으로 극복하려 했다는 점에서도 그의 성향이 엿보여요. 주어진 방식에 순응하지 않고 나름의 해법을 찾아 행동으로 옮기는 태도, 이것이 명진스님을 관통하는 성격이었습니다.

추모는 어떻게 이어지고 있나요?

명진스님의 장례는 종교시민사회장으로 치러진다고 합니다. 종교시민사회장이라는 장례 형식은 고인이 평생 걸어온 길, 즉 종단 안의 수행자이면서 동시에 사회 밖의 행동가였던 삶을 반영하죠.

23일 서울 봉은사 선불당에 마련된 빈소를 찾은 시민들이 줄을 지어 조문했다고 해요. 빈소에는 고인의 수행과 행동을 기억하는 불자들뿐 아니라, 사회 참여적 행보에 공감했던 일반 시민들의 발걸음도 이어졌습니다. 조문객들이 선불당 앞에서 고인을 추모하는 모습 속에는, 명진스님이 종단의 울타리를 넘어 대중과 소통해온 삶의 궤적이 고스란히 담겨 있겠죠.

이재명 대통령은 페이스북에 애도 글을 올리기도 했습니다. ‘대한민국 불교계의 큰 어른을 떠나보내게 된 슬픔을 온 국민과 함께 나눈다’고 밝히셨다고 해요. 정치권의 애도가 정부 비판의 대상이었던 스님에게 표명되었다는 점은, 명진스님의 영향력이 정파의 경계를 넘어 있었음을 짐작하게 합니다.

봉은사 명진스님 입적 소식은 실시간 검색어 2위에 올랐답니다. 불교계 인사의 입적이 대중의 높은 관심을 받은 배경에는, 고인이 종단 내부의 문제에만 머물지 않고 사회의 여러 쟁점에 목소리를 내온 행적이 자리잡고 있어요. 빈소를 찾는 시민들의 발걸음과 온라인상의 추모가 동시에 이어지면서, ‘행동하는 수행자’로서의 명진스님이 남긴 자취가 넓은 공감대로 확장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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